입력 : 2010.01.16 03:21 / 수정 : 2010.01.16 14:57
물론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2도 이상 오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에 합의를 한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그들이 속속 드러나는 과학적 증거에 약간의 관심이나마 가졌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공통된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각국의 역량’ 같은 1992년 리우 선언 당시 채택됐던 몇 가지 원칙들도 재확인됐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 ‘충분하고 안정적인 재정적 기술적 지원과 역량 구축 지원’을 하겠다는 선진국들의 합의 역시 재확인했다.
코펜하겐의 실패는 법적 구속력의 부재(不在) 때문이 아니다. 진짜 실패는 지구를 구한다는 그 숭고한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지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탄소 배출 저감에 대한 합의도 없었고,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합의도 없었으며, 개발도상국들을 어떻게 도울지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기후 변화 대응과 완화를 위해 2010년에서 2012년 기간에 300억 달러 정도를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는 것마저도, 2008~2009년에 금융기관 구제에 들어간 천문학적 금액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우리가 은행을 살리는 데 그만한 돈을 썼다면 지구를 살리는 데는 훨씬 더 많이 지불해야 마땅할 텐데 말이다.
실패에 따른 결과는 이미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EU(유럽연합)의 탄소 배출 선물(先物) 거래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탄소 배출을 감량하는 데 있어 인센티브가 적다는 뜻이며, 향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 혁신에 투자하는 데에도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는 의미다. 그동안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투자해 바른길을 가고자 했던 기업들은 이제 제재를 받지 않고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아무 부담 없이 탄소를 배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비해 계속 불리한 입장이다.
코펜하겐의 실패 뒤에는 몇 가지 깊은 문제가 숨어 있다. 교토 의정서 식 접근은 탄소 배출권을 할당하는 것인데, 이는 가치가 높은 자산이 된다. 탄소 배출이 적절하게 제한된다는 가정하에 탄소 배출권의 가치는 연간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며, 누가 얼마나 이 가치를 가져가느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탄소 배출을 많이 한 주체가 미래에도 탄소 배출을 많이 할 권리를 갖는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인구 1인당 균등한 배출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공평하다. 대부분의 윤리적 원칙도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을 세상에 배분해야 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줘야 한다고.
윤리적인 원칙에 따른다면 지구 온난화 문제가 이슈화된 1992년 이후에 탄소 배출을 많이 했던 국가들은 미래에는 당연히 탄소 배출 권리가 축소돼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식의 할당은 은연중에 수조달러의 돈을 부유국에서 빈곤국으로 이전시킬 것이다.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데 연간 2000억달러는 고사하고 연간 100억달러를 부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와 같은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때인지 모른다. 탄소 세(稅)를 통해서든 탄소 배출 상한제를 통해서든 탄소 배출의 비용을, 예컨대 톤당 80달러와 같은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국가들이 약속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들은 그로 인한 수입을 다른 세금의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훨씬 더 이치에 맞는 일이다.
선진국은 그 수입의 일부를 개도국의 기후 변화 적응을 돕고, 개도국이 숲을 유지하는 데 대해 보상해 주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탄소 배출을 억제함으로써 글로벌 공공재를 생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호의(好意)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계속 보아왔다. 우리는 이제 좋은 의도를 자기 이익과 결합해야 한다. 이는 특히 미국 등 몇몇 나라의 지도자들이 신흥 국가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컨대 기업들의 탄소 배출에 대해 적절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국경세를 부과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각국이 탄소세나 배출 상한제를 채택하도록 경제적, 정치적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경제적 유인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세계가 꾸물거리고 있는 동안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점점 많아지고, 세계 각국이 지구 온난화를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합의된 목표조차 달성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탄소 배출권에 기초한 교토의정서 식 접근에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근저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려해 볼 때 코펜하겐의 실패 역시 놀랄 일도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 교토의정서 이외의 대안을 시도해 본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
댓글 쓰기